동물 RNAi 발견 20년 만에 첫 약이 탄생하다

사람의 병은 어떤식으로든 단백질과 관련돼 있는 게 많습니다. 단백질은 모양이 중요하구요. 약은 단백질 사이에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서 다른 단백질에 못 붙게 막아버린다거나, 단백질 모양을 바꿔버린다거나, 화학적 성질을 바꾸는 등, 모양에 딱 맞춰서 동작합니다. 아무데나 붙어서 엉뚱한 일을 하면 안 되니까요.

옛날부터 오랫동안 사람들은 미생물이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만들어낸 화학물질을 항생제로 활용하고, 우연히 발견된 여러가지 천연물에서 순수정제한 여러 물질들을 쓰기도 했습니다. 사람이 단백질 모양을 보고 설계한게 아니라, 효과가 있는 물질을 찾은거죠. 그러다, 글리벡이라는 판을 바꾸는 약이 등장했습니다. 아예 단백질 모양을 보고 거기에 딱 맞는 화학물질을 설계해서 약으로 만들어버린거죠. 효과도 아주 좋아서, 덕분에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의 5년 생존률이 31%에서 59%로 올라갔습니다.


BCR-ABL 퓨전 단백질(초록색)과 글리벡(Imatinib; 빨간색) – from wikimedia, public domain

이제 단백질을 없애서 낫는 병이라면, 아무거나 단백질 구조만 있으면 무슨 약이든 만들 수 있게 됐…..으면 좋았겠지만.. 생각보다 단백질 구조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구조를 정확하게 아는 것도 어려울 뿐더러, 거기에 딱 맞고 다른 곳에는 안 맞아서 엉뚱한 효과가 없는 쪼끄만 화학 물질을 만들기란 쉽지 않았죠. 요새 유행하는 항체 약도 한 방법이지만, 나름대로의 애로사항이 많습니다.

아니 그런데, 단백질은 어차피 RNA를 보고 만들고, RNA는 A, C, G, U 4가지 알파벳만 쓰는 그냥 1차원 문자열인 셈인데, RNA를 인식해서 없애면 결국 단백질을 없앨 수 있으니 훨씬 쉬운 것 아닌가요? 2000년에 동물 siRNA의 기본 원리를 발견한, 지금은 전설급인 과학자들 David Bartel, Phil Zamore, Thomas Tuschl과, 원래부터 전설이었던 Phil Sharp은 논문도 내기 전 부터 어디 쓰게 될지 감이 딱 와서 특허도 착착 바로 딱 내고, 회사도 차렸습니다. Alnylam Pharmaceuticals라고 멋진 이름도 지었습니다. RNA 서열은 단백질 구조에 비해 알아내기도 쉽고, 설계도 그냥 메모장 띄워놓고 해도 몇 분이면 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쉽습니다.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장밋빛 미래가 쫙 펼쳐졌죠!


siRNA(윗쪽 굵은 선)가 mRNA(아래 긴 선)에 붙어서 탁! 하고 부심. CC BY-SA 4.0 by Singh135

하지만 인생은 늘 쉽지 않습니다. 20~22글자 서열을 딱 인식해서 정확하게 딱 잘라버릴 것만 같았던 siRNA가 세포 안에만 들어가면 엉뚱한 친구들을 건드리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생물학자들은 오프타겟 효과라고 부릅니다. 이 오프타겟 효과 때문에 아주 골치가 아파집니다. A를 없애려고 딱 넣었더니 B, C, D, E, F, G, H, I도 서열이 조금 비슷하다고 같이 없어져버리고, 걔네들이 줄어드니까 또 다른 것들이 연달아 바뀌고.. 아주 정신이 없어졌습니다. 수많은 연구자들이 siRNA의 오프타겟 효과 때문에 인생의 적지않은 부분을 날려버렸습니다. -.-

게다가 예쁜꼬마선충이라는 귀여운 이름의 벌레와는 달리, 사람은 RNA을 정성들여서 먹어봐야 피에 들어가기 전에 다 소화돼버립니다. RNA는 꽤 많은 바이러스의 유전물질이기도 하기 때문에, 피에서도 그냥 둥둥 떠 다니면 이놈 바이러스 잡아라 하고 집중 공격을 받습니다. 먹어도 안 되고 주사해도 안 되면 어찌 하란 말인가 하는 문제가 또 있었습니다.

다시, 세상을 열심히 사는 과학자들이 나설 차례입니다. siRNA가 멋지게 좀 더 원하는 일만 하도록, 피에 딱 찔러 넣으면 멀쩡히 오랫동안 버티고, 세포 안으로도 쉽게 쏙 들어가도록 수많은 변형을 시험해 봅니다. 하지만, 거의 15년 동안 대형제약회사들을 포함한 많은 투자자들이 돈을 쏟아부었지만, 싹이 노란 채로 더욱 더 노래지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다행히도 몇 개 성공 가능성이 보이는 약이 등장했습니다.


TTR 단백질 4개가 붙어서 생긴 정상 구조 (1번), 혼자 떨어진 TTR (2번), 어쩌다 잘못 접힌 TTR (3번), 잘못 접힌 TTR이 마구 붙어서 거대한 아밀로이드 원섬유가 돼 버린 구조 (4번) – (c) J. Kelly, The Scripps Research Institute.

자잔~ 바로 며칠 전에 임상시험 거의 마지막 단계인 3상을 성공한 파티사란(patisiran)입니다. 파티사란은 가족성 아밀로이드증 (hATTR)이라는 희귀 유전질환을 치료하는 약입니다. 환자들은 TTR이라는 단백질에 변이가 있어서, 이상한 모양으로 꼬여서 세포에 계속 쌓이기만 하고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 결과, 녹내장, 치매, 발작, 부정맥, 신부전, 부종, 요로감염, 이한증 등 거의 온몸에서 문제가 생겨서 대체로 오래 살지 못하고, 살더라도 삶의 질이 극도로 떨어지는 심각한 상황이 됩니다. 파티사란은 TTR 단백질을 만드는 mRNA를 없애도록 설계된 siRNA 약입니다. 멋지게 지방 나노입자 (lipid nanoparticle)에 쌌고, 좀 더 안정성있게 식물에서 많이 사용하는 2′-O-methylation이라는 변형 RNA 화학구조도 도입했습니다. 그 결과 3상에서 p-value 0.00001로 증상 개선에 효과 있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Alnylam은 단박에 주가가 40%오르고 hATTR 환자들은 처음으로 쓸만한 약을 얻었습니다. 아마도 약값은 무진장 비싸겠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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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isiran은 TTR 3′ UTR을 targeting하는 siRNA입니다. 요즘 나오는 사이보그 수준의 engineering이 들어가지 않은, 보통 우리가 실험에 많이 쓰는 19-mer duplex 뒤에 dT-dT 붙어있는 전통적인 siRNA 구조입니다. mRNA target과 binding affinity도 높이고 stability도 올리는 목적으로 2′-O-methylation이 guide에 2개, passenger에 9개 되어 있습니다. 올 초에 출시된 oligonucleotide drug인 SPINRAZA가 모든 2′ 위치에 평소에 연구용으로는 거의 보기 힘든 2-methoxyethyl을 붙이고, backbone도 O 하나를 S로 교체한 것에 비해 상당히 단순합니다.

5′-------A--U-G--G--A--A--Um-A--C-U-C-U-U-G--G--U-Um-A--C-dT-dT-3′
3′-dT-dT-Um-A-Cm-Cm-Um-Um-A--Um-G-A-G-A-A-Cm-Cm-A-A--Um-5′

보통 off-target 효과를 분산해서 전체적으로 줄이려고 siRNA를 여러 개 짜서 섞어서 쓰는 전략도 많이 쓰는데, patisiran은 약이라서 그런지 딱 1개만 썼네요. Target 지역은 stop codon에서 50nt 정도 떨어진 지역입니다. 아무래도 TTR mutation이 주된 2-3가지 타입 외에도 여러가지가 있고, 노인성 아밀로이드증은 아예 wild-type이 쌓이기도 하니까, 최대한 모든 TTR을 커버하려는 것 같습니다. TTR 3′ UTR 앞 쪽은 그 흔한 SNP도 보고된 것이 거의 없네요.


TTR stop codon 근방과 3′ UTR 지역. 맨 위 YourSeq으로 표시된 부분이 patisiran이 타겟하는 부분. (by Hyeshik, CC BY-SA 4.0)

patisiran이 인식하는 부위는 딱 siRNA 디자인의 정석에 해당하는 자리입니다. Seed 서열이 off-target 효과에 가장 결정적인데요, patisiran의 경우는 UGGAAU입니다. 기존의 많이 발현되는 miRNA 중에 완벽하게 같은 seed를 갖고 있는 것이 없고, 1개 차이 나는 것 중에서도 많이 발현되는 녀석들은 passenger strand 뿐입니다.


patisiran과 seed가 전체 또는 1nt 차이로 겹치는 miRNA들. passenger도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 (by Hyeshik, CC BY-SA 4.0)

그리고, target 지역의 2차 구조가 문맥에 관계 없이 어떤 상황이더라도 비슷한 구조로 딱 접혀있어야 dose 조절이나 약동학적 분석이 쉬워질텐데요. 17bp 정도 되는 stem loop에 딱 siRNA guide가 맞게 디자인 됐습니다. loop 부분과 bulge, 2′-O-Me가 있으니까 열역학적으로도 충분히 stem loop을 풀고 binding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TTR 3′ UTR 일부. patisiran에 상보적인 부분이 대문자로 표시되어 있음. (by Hyeshik, CC BY-SA 4.0)

Alnylam은 똑같은 TTR을 타겟으로 다른 chemical modification과 다른 delivery agent로도 임상시험을 병렬로 진행했었는데, 지금은 모두 중단되었다고 합니다. 모든 측면에서 더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든 게 결국 더 성공적이었네요~ 활발히 개발되고 있는 다른 siRNA drug들도 앞으로 끝까지 살아남는 녀석들이 많기를 기원해 봅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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